
치매와 파킨슨병으로 오래 투병한 60대 여성의 계좌에서, 그를 돌보던 요양보호사에게 2년 동안 1억 6천만 원이 넘는 돈이 넘어간 사실이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첫 이체는 남편이 숨지고 사흘 뒤 장례가 치러지던 무렵이었고, 그 뒤로 196차례에 걸친 계좌이체, 정기예금 해지 뒤 건네진 현금과 수표, 승용차 매각 대금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다른 요양보호사가 "계좌에서 돈이 계속 사라진다"고 가족에게 알리면서 드러났다.
가족은 사기 혐의로 고소했지만 경찰은 지난해 혐의없음으로 판단했다. 피해자가 인지능력 저하로 피해 진술을 하지 못하고, 평소 요양보호사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였다. 요양보호사는 "본인 의지로 준 돈", "일한 만큼 받은 돈"이라는 입장이다. 가족이 이의신청을 냈고, 사건을 넘겨받은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구해 경찰이 다시 수사하고 있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속았다"고 말할 수 없는 재산범죄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묻는다. 고령화로 치매 환자의 재산을 가까이서 관리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가족이 미리 알아 둘 법리와 대응 방법을 정리해 본다.
1. 속이지 않았어도 처벌되는 준사기죄
가. 사기죄와 준사기죄의 차이
형법 제347조의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해 재물을 받는 범죄다. 거짓말로 착오를 일으키고, 그 착오에 따라 피해자가 스스로 재산을 내주는 구조다. 그런데 판단능력이 크게 떨어진 사람은 애초에 속일 필요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형법 제348조는 미성년자의 사리분별력 부족이나 사람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재물을 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은 경우를 준사기죄로 따로 처벌한다. 법정형은 사기죄와 같은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가족 측 대리인이 "적극적으로 속이지 않았더라도 준사기는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준사기죄에서 따질 것은 거짓말이 있었느냐가 아니라, 돈이 넘어갈 당시 피해자의 정신 상태가 어땠고 상대방이 그 상태를 알고 이용했느냐다.
나. '스스로 줬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
"본인이 원해서 줬다"는 해명은 피해자에게 그 의사를 만들 능력이 있었다는 전제 위에서만 의미가 있다. 민사에서도 같은 질문이 나온다. 대법원은 의사능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대법원 2002. 10. 11. 선고 2001다10113 판결의사능력이란 자기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정상적인 인식력과 예기력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말하고, 그 유무는 구체적인 법률행위와 관련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큰돈을 빌리며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한 계약을, 당사자가 그 법률적 의미를 이해할 능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무효로 보았다. 같은 사람이라도 장보기 정도의 일상 판단은 가능하면서 수천만 원의 증여가 무슨 뜻인지는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 곁에 있는 사람에게 생활비를 맡기는 것과 정기예금 1억 원을 깨서 넘겨주는 것은 전혀 다른 판단이다.
2. 수사가 막히는 지점과 다시 여는 방법
가. 피해자 진술이 없을 때 쓰는 증거
이런 사건에서 경찰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피해자 진술이다. 그러나 진술을 대신할 객관적 자료는 생각보다 많다. 치매 진단서와 진료기록, 장기요양 등급 판정 자료는 돈이 나간 시점의 인지 상태를 보여 준다. 계좌 거래내역은 금액과 횟수, 시점의 패턴을 드러낸다. 장례 기간처럼 피해자가 가장 취약했던 때에 이체가 시작됐다는 사정도 중요한 정황이다. 함께 일한 다른 요양보호사, 방문요양센터 기록, 은행 창구 직원의 기억도 쓸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경찰은 "당시 부르지 못한 참고인들을 조사하고 의료기록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이런 자료를 정리해 고소장에 붙였다면 수사의 출발점이 달랐을 것이다.
나. 혐의없음 판단을 받았다면
경찰이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그 결과를 통지하면 고소인은 해당 경찰관서의 장에게 이의를 신청할 수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245조의7은 이의신청을 통지를 받은 날부터 3개월 안에 하도록 정하고 있고, 이의신청이 들어오면 사법경찰관은 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해야 한다. 기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첫째이고, 이의신청서에는 경찰이 조사하지 않은 참고인과 확인하지 않은 기록을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 좋다. "억울하다"는 호소보다 "무엇을 더 보면 결론이 달라지는지"를 보여 주는 서면이 힘을 가진다.
3. 가족이 지금 할 일
가. 돈의 흐름부터 막고 기록한다
이상한 이체를 발견했다면 먼저 은행에 연락해 추가 인출을 막을 방법을 확인하고, 2년이든 5년이든 가능한 범위의 거래내역을 모두 발급받아야 한다. 인터넷뱅킹 접속 기록, 체크카드 사용처, 현금 인출 장소의 영상 보존 요청도 빠를수록 좋다. 피해자의 휴대전화 메시지와 통화 기록, 돌봄 일지도 함부로 지우거나 정리하지 말고 그대로 보관한다.
나. 형사와 민사를 함께 준비한다
형사 고소와 별개로,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증여는 무효이므로 넘어간 돈의 반환을 민사로 청구할 수 있다. 상대방이 재산을 빼돌릴 우려가 있다면 가압류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 피해자 본인이 소송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면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해 후견인이 소송을 맡는 방법이 있다. 후견인이 선임되면 이후 재산 관리도 법원의 감독 아래 놓이게 되어 같은 피해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시효로 소멸하므로 이 기간도 챙겨야 한다.
다. 요양보호사로 지목됐다면
반대로 정당한 대가나 생활비 대납을 주장하는 쪽이라면, 그 근거를 금액별로 소명할 자료가 필요하다. 영수증, 장보기 내역, 가족과 주고받은 메시지가 그것이다. 막연히 "고마워서 준 돈"이라는 설명은 상대방의 인지 상태가 확인되는 순간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4. 맺으며
치매 환자의 재산 피해는 피해자가 피해를 말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가장 조용한 범죄다. 정서적으로 의존할수록 경계는 더 낮아지고, 가족이 멀리 있을수록 발견은 늦어진다. 수사기관은 피해자 진술이 없다는 이유로 판단을 멈출 것이 아니라 진료기록과 거래 패턴, 주변인 진술로 공백을 메워야 한다. 가족 역시 돌봄을 맡기는 순간부터 계좌 알림 설정, 정기적인 거래내역 확인, 필요하면 후견제도 활용까지 재산을 지키는 장치를 함께 마련해 두기를 권한다.
(대온 법률사무소 신동우 대표변호사)
이 칼럼은 2026. 10. 26. 기준 법령과 판례로 쓴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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